• 최종편집 2025-11-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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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창평 들녘을 따라 바람처럼 천천히 걷다 보면, 도시의 소란함은 어느새 뒤로 멀어지고 고요한 시간이 그 자리에 머문다. 그 고요의 끝에서 마주하게 되는 공간, 바로 ‘남극루’다. 단순한 누각 이상의 의미를 지닌 이곳은 오랜 세월 마을의 이야기를 품어온 장소이자, 창평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과 지혜가 켜켜이 스며든 공동체의 상징이다.


남극루의 역사는 18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지역 유림 고광일을 비롯한 30여 명이 마을 어르신들을 위한 쉼터를 마련하고자 처음 이 누각을 세웠다. 이후 1919년 현재의 자리로 옮겨진 뒤, 오늘날까지 지역의 역사와 정서를 지켜오고 있다. 창평 주민들은 이 누각을 ‘양로정’이라 부르며, 장수를 상징하는 별인 ‘남극성(노인성)’에서 이름을 따와 어르신들의 평안과 건강을 기원해 왔다.


남극루는 그 자체로 건축적인 아름다움을 지닌다. 평지에 세워진 보기 드문 2층 누각으로, 단정한 팔작지붕과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구조를 갖추고 있다. 외벌대 기단 위에는 누하(下)와 누상(上)의 기둥 구조가 다르게 짜여 있으며, 천장에는 전통 연등천장 기법이 사용돼 고풍스러움을 더한다. 현재는 담양군 향토문화유산 제3호로 지정되어, 문화재적 가치 또한 인정받고 있다.


누각에 오르면 창평 들녘의 드넓은 논밭과 멀리 월봉산까지 시원하게 조망된다. 붉은 황혼이 들판을 물들이는 풍경은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이 된다. 누각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시끌벅적한 소음 대신 잔잔한 바람과 흙길을 걷는 고요한 발걸음이 어우러지고, 굽이굽이 이어진 돌담길은 창평 특유의 소박한 정취를 한층 더한다.


남극루가 가진 진정한 가치는 그곳을 찾는 이들에게 전해지는 ‘위로의 힘’에 있다. 화려한 장식이나 요란한 볼거리는 없지만, 그 담백한 아름다움 속에서 우리는 창평 고유의 정서와 여유를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오랜 시간 동안 마을 사람들의 쉼터이자 소통의 공간이 되어준 남극루는 오늘날에도 지역 주민은 물론 여행자들에게도 잔잔한 평온과 사색의 시간을 선사한다.


창평 슬로시티의 느릿한 발걸음처럼 남극루는 시간을 거슬러 흐르는 여유를 품고 있다. 마치 오랜 세월 한 자리를 지켜온 정자나무처럼, 이 누각은 오늘도 조용히 그 자리에 서서 삶의 소중한 순간들을 품어내고 있다. 남극루는 단지 오래된 건축물이 아니라, 창평이라는 마을이 간직한 따뜻한 기억의 집이자, 시간이 머무는 곳이다.

KIN.KR 2025-11-05 17: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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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평의 들녘 끝, 고요한 위로가 머무는 곳… 남극루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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